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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버넘의 경력

앤디 버넘의 경력

“북부의 왕”은 왜 차기 영국 총리 후보로 떠올랐나

스타머 총리 사임으로 단숨에 중심인물로 부상

영국 정치에서 앤디 버넘의 이름이 빠르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2026년 6월 22일,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혔습니다. 스타머 총리는 2024년 총선에서 노동당을 14년 만에 정권 복귀로 이끈 인물이었지만, 지방선거 참패, 지지율 하락, 당내 사퇴 압박이 겹치면서 취임 2년도 되지 않아 퇴진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임 후보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이 바로 앤디 버넘입니다.

버넘은 과거 노동당 정권에서 각료를 지낸 정치인이며, 최근까지 그레이터 맨체스터 시장으로서 강한 지지를 받아 왔습니다. 2026년 6월 18일 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며 중앙 정치에 복귀했고, 그 직후 스타머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단숨에 “차기 영국 총리 후보”로 떠올랐습니다.

즉, 버넘의 경력은 단순한 정치인의 이력에 그치지 않습니다. 영국 정치의 혼란, 지방의 불만, 노동당의 위기, 우파 포퓰리즘에 대한 대응이라는 현재 영국 정치의 여러 흐름을 보여 주는 하나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앤디 버넘 기본 프로필

이름 앤디 버넘
영문 표기 Andy Burnham
본명 Andrew Murray Burnham
생년월일 1970년 1월 7일
출생지 잉글랜드 북서부 에인트리 인근
출신 학교 세인트 엘레드 가톨릭 고등학교, 케임브리지대학교 피츠윌리엄 칼리지
전공 영문학
소속 정당 노동당·협동당
주요 경력 하원의원, 보건장관, 문화·미디어·스포츠장관, 그레이터 맨체스터 시장
현재 주목되는 이유 스타머 총리의 후임 후보, 노동당 대표 후보

버넘은 영국 북서부에 강한 정치적 기반을 가진 정치인입니다. 런던 중심의 정치에 맞서 지방 도시와 노동자층의 입장을 전면에 내세워 왔기 때문에, “King of the North”, 즉 “북부의 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 별명은 단순한 수식어가 아닙니다. 영국에서는 정치, 금융, 언론, 행정 기능이 런던에 집중되어 있으며, 잉글랜드 북부에는 오랫동안 지역 격차에 대한 불만이 존재해 왔습니다. 버넘은 이러한 불만을 대변하는 정치인으로 존재감을 키워 왔습니다.

케임브리지대학교

학력|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다

버넘의 경력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부분 중 하나는 학력입니다.

버넘은 지역의 가톨릭계 학교에서 공부한 뒤, 명문 케임브리지대학교 피츠윌리엄 칼리지에 진학했습니다. 전공은 영문학이었습니다.

영국 정치인 중에는 옥스퍼드대학교나 케임브리지대학교 출신이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버넘 역시 영국 정치의 전통적인 엘리트 교육을 받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버넘을 단순히 “케임브리지 출신 엘리트 정치인”으로만 보면 그의 인물상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명문대에서 공부하고 젊은 시절 런던 정치권에 들어갔지만, 이후에는 오히려 “지방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치인”으로 지지를 넓혀 왔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이 버넘이라는 인물의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케임브리지대학교 출신이면서도, 정치적 태도에서는 런던 중심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잉글랜드 북부와 노동자층에 가까운 이미지를 구축해 왔습니다. 다시 말해 학력은 엘리트적이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는 매우 서민적입니다.

이 두 가지 면모가 현재 버넘의 큰 특징이 되고 있습니다.

엘리트 출신이지만 서민적인 정치인

버넘은 서민적인 정치인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그러나 그의 경력을 살펴보면, 단순히 반엘리트 노선을 걸어온 인물은 아닙니다.

지역 학교를 거쳐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졸업 후에는 정치인의 리서처와 정책 스태프로 일했습니다. 이후 노동당 정권 아래에서 정부의 주요 직책을 맡았고, 젊은 나이에 중앙 정치의 핵심에 가까운 위치까지 올라갔습니다.

즉, 버넘은 영국 정치의 중심부를 모르는 “완전한 아웃사이더”가 아닙니다. 오히려 중앙 정치의 구조를 잘 아는 정치인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많은 사람에게 친근한 인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한때 중앙 정치에서 물러나 그레이터 맨체스터 시장으로서 지방 행정에 깊이 관여했기 때문입니다. 교통, 주택, 노숙자 대책, 청년 지원 등 주민 생활과 가까운 주제를 다루며, 런던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지방의 불만을 대변해 왔습니다.

케임브리지대학교 출신의 엘리트이면서도, 지방 도시의 생활 감각을 전면에 내세우는 정치인.

이 두 가지 면모야말로 버넘의 큰 매력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노동당에 관심

버넘은 젊은 시절부터 노동당에 관심을 가져 온 정치인입니다.

10대 때부터 노동당과 관련을 맺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찍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영국 북서부에서 성장한 경험도 지역 격차와 노동자층의 삶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버넘은 가톨릭계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훗날 그는 교회에서 접한 가치관과 노동당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받아들였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는 것, 공동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사회의 불공정함에 눈을 돌리는 것. 이러한 생각들은 버넘의 정치적 태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2001년, 하원의원으로 중앙 정치 입문

런던

버넘은 2001년 총선에서 그레이터 맨체스터의 리 선거구에서 하원의원으로 처음 당선되었습니다.

당시 영국은 토니 블레어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 정권 시기였습니다. 블레어 정권은 “뉴 레이버”라고 불리는 중도 노선을 내세우며, 노동당을 현실적이고 집권 능력이 있는 정당으로 보이게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버넘 역시 이 뉴 레이버 시대에 중앙 정치에서 경험을 쌓은 정치인입니다. 내무부, 보건부, 재무부, 문화·미디어·스포츠부 등에서 여러 직책을 맡으며, 젊은 나이에 정권 핵심부에 가까운 경험을 했습니다.

이 시기의 버넘은 노동당 정권의 젊은 유망주 중 한 명으로 여겨졌습니다. 정책 스태프에서 하원의원이 되고, 다시 정부 내 직책을 맡는 흐름은 영국 집권당 내부에서 성장해 가는 전형적인 정치 경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각료로서 보건장관·문화장관 등을 역임

버넘의 중앙 정치 경력에서 특히 중요한 부분은 고든 브라운 정권에서의 각료 경험입니다.

주요 직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기 주요 직책
2007년〜2008년 재무부 수석 정무차관
2008년〜2009년 문화·미디어·스포츠장관
2009년〜2010년 보건장관

보건장관은 영국 정치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입니다. 영국에는 NHS, 즉 국민보건서비스가 있으며, 의료 제도는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최대 정치 현안 중 하나입니다.

버넘은 보건장관 경험을 통해 의료 정책에 밝은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했습니다. 이후 노동당 대표 후보로 거론될 때도, NHS와 관련된 경험은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 되었습니다.

반면 보건 행정은 비판을 받기 쉬운 분야이기도 합니다. 병원, 의료비, 대기 시간, 제도 개혁 등 어느 정권에서도 어려운 문제가 뒤따릅니다. 버넘에게 보건장관 시절은 실적과 함께 중앙 정치의 엄격함을 알게 해 준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문화·미디어·스포츠장관을 지낸 경험도 그의 경력에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영국에서는 축구와 럭비 같은 스포츠 문화가 지역 사회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북서부 출신인 버넘에게 스포츠와 지역 문화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지역 정체성과도 관련된 주제였습니다.

노동당 대표 선거에 두 차례 도전

버넘은 과거 노동당 대표 자리를 목표로 한 적이 있습니다.

2010년, 노동당이 정권을 잃은 뒤 치러진 대표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이때는 에드 밀리밴드가 승리했고, 버넘은 대표 자리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이후 2015년에도 노동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좌파 성향의 제러미 코빈이 큰 지지를 얻으며 승리했고, 버넘은 다시 패배했습니다.

이 두 차례의 패배는 버넘의 정치 인생에서 큰 좌절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를 단순한 중앙 정치인에서 다른 길로 나아가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길이 바로 그레이터 맨체스터 시장으로의 전환이었습니다.

중앙 정치에서 당 대표가 되지 못한 버넘은 정치인으로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지방 정치 현장으로 이동하면서 자신의 강점을 다시 만들어 나갔습니다.

맨체스터 시장으로 “북부의 왕”이 되다

맨체스터

2017년, 버넘은 초대 그레이터 맨체스터 시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레이터 맨체스터는 맨체스터시뿐 아니라 주변 여러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하는 대도시권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오랜 역사를 가진 지역으로, 영국 북부를 대표하는 곳 중 하나입니다.

버넘은 시장으로서 교통, 주택, 노숙자 대책, 지역 경제, 청년 지원 등에 힘썼습니다. 특히 잘 알려진 정책은 버스 교통 개혁입니다. 민간 중심이던 지역 버스망을 공적 관리 아래 두는 개혁을 추진하며 지방 행정의 실행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또한 코로나19 유행 시기에는 중앙정부의 지역 규제와 지원책을 둘러싸고 보리스 존슨 정권과 대립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버넘은 맨체스터 지역의 입장을 강하게 주장했고,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런던 정부에 맞서 북부의 생활을 지키는 정치인.

이러한 이미지가 자리 잡으면서 버넘은 “북부의 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인물상이 드러나는 에피소드

버넘이 친근한 정치인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정책이나 직함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의 인생에는 인물상을 보여 주는 여러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케임브리지 진학에 대한 망설임

버넘은 명문 케임브리지대학교에 진학했지만, 처음부터 자신만만하게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인물이라기보다는 고향의 분위기와 자신의 목표 사이에서 갈등을 느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고향에는 “큰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 주변에서 농담처럼 받아들이거나 놀리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처음부터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듯합니다.

이 에피소드는 버넘이 단순히 출세욕이 강한 정치인이 아니라, 자신이 자란 지역의 분위기와 계층 의식을 강하게 느껴 온 인물임을 보여 줍니다.

탄광 파업을 보며 정치에 눈뜨다

버넘은 젊은 시절 통학 버스에서 탄광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1980년대 영국에서는 대처 정권 아래 탄광 파업이 큰 사회 문제가 되었습니다.

친구들의 아버지들이 파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본 경험은 버넘에게 큰 정치적 체험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중앙정부의 정책이 지방의 가정과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젊은 시절부터 직접 느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훗날 버넘이 “북부의 목소리”와 “지방의 삶”을 강하게 주장하게 된 배경에는 이러한 원체험도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가톨릭 가치관과 노동당의 생각

버넘은 가톨릭계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는 교회에서 접한 가치관과 노동당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받아들였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물론 현재 버넘의 정치적 태도가 종교만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약한 사람을 돕는 것, 공동체를 중시하는 것, 사회의 불공정함에 주목하는 것은 그의 정치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 점도 그가 단순히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사회 정의와 지역 공동체를 중시하는 인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힐스버러 추모식에서의 경험

버넘의 정치 인생에서 큰 전환점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힐스버러 추모식에서의 경험입니다.

힐스버러 참사는 1989년 리버풀 축구 팬 다수가 희생된 영국 축구 역사상 큰 비극입니다. 오랫동안 유가족과 관계자들은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요구해 왔습니다.

버넘은 정부 측 대표로 추모식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정부에 대한 분노와 “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하게 터져 나왔고, 버넘은 매우 엄격한 반응을 마주했습니다.

이 경험은 버넘에게 큰 충격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훗날 그는 이 일이 자신에게 큰 전환점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버넘이 “웨스트민스터 정치”와 “현장의 분노” 사이의 거리를 강하게 의식하게 된 사건으로 이야기됩니다. 현재 버넘이 런던 중심의 정치에 맞서 지방의 목소리를 중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과도 연결됩니다.

축구와 지역 문화에 가까운 정치인

버넘은 영국 북서부의 지역 문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정치인입니다. 축구와 럭비리그처럼 지역 사람들에게 친숙한 스포츠 문화에도 가까웠습니다.

영국에서는 정치인의 학력이나 정책뿐 아니라, “어느 지역 사람인가”, “어떤 클럽과 문화에 친숙한가”도 인물상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줍니다.

버넘이 단순한 중앙 정치인이 아니라 북부 잉글랜드의 생활 감각을 가진 인물로 여겨지는 데에는 이러한 배경도 있습니다.

좌절 후 다시 돌아온 정치인

버넘은 노동당 대표 선거에 두 차례 도전했지만 모두 패했습니다. 보통이라면 그 시점에서 정치적 기세를 잃어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중앙 정치의 중심에서 한 걸음 물러나 그레이터 맨체스터 시장으로서 정치인으로서의 평가를 다시 쌓았습니다. 그리고 2026년 하원 보궐선거를 통해 중앙 정치에 복귀했고, 스타머 총리의 후임 후보로 다시 무대의 중심에 섰습니다.

이처럼 “한 번 패배한 뒤 지방에서 다시 돌아온” 경력은 버넘을 단순한 엘리트 정치인이 아니라 하나의 서사를 가진 인물로 보이게 합니다.

왜 버넘은 인기가 있는가

버넘의 인기는 단순히 경력이 화려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큰 이유 중 하나는 말하는 방식과 이미지가 알기 쉽다는 점입니다. 스타머가 법률가 출신다운 냉정함과 신중함을 앞세우는 유형이라면, 버넘은 감정과 현장 감각에 호소하는 유형입니다.

영국에는 물가 상승, 이민 문제, 의료 제도, 주택 문제, 지역 격차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버넘은 “우리 이야기를 들어 줄 것 같은 정치인”으로 보이기 쉽습니다.

또한 우파 포퓰리스트 정당인 리폼 UK의 성장도 버넘을 더욱 주목받게 하는 요인입니다. 노동당 내부에는 이대로라면 노동자층과 지방 표심을 리폼 UK에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습니다.

버넘은 그런 계층에 다가갈 수 있는 정치인으로 기대받고 있습니다.

2026년 6월, 하원 보궐선거로 중앙 정치 복귀

2026년 6월 18일, 버넘은 메이커필드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며 하원의원으로 중앙 정치에 복귀했습니다.

이 승리는 단순한 보궐선거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영국 노동당에서 대표를 목표로 하려면 하원의원으로 중앙 정치에 돌아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이 보궐선거는 버넘에게 총리 후보로 향하는 입구이기도 했습니다.

보궐선거에서 버넘은 리폼 UK 후보를 크게 앞서며 승리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리폼 UK에 맞설 수 있는 노동당 정치인”이라는 존재감을 더욱 키웠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스타머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버넘은 단숨에 후임 최유력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중앙 정치 복귀를 통해 버넘은 다시 영국 정치의 중심으로 돌아왔습니다. 시장으로서 지방에서 목소리를 내던 정치인이 이제는 하원의원으로서 집권 노동당의 리더 후보가 된 것입니다.

스타머 총리 사임으로 영국 정치는 어떻게 바뀔까

앤디 버넘

스타머는 2024년 총선에서 노동당을 대승으로 이끌었습니다. 보수당의 14년 집권을 끝내고, 영국 정치를 안정시킬 인물로 기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정권 출범 이후 지지율은 기대만큼 오르지 않았습니다. 정책 혼선, 당내 불만, 지방선거 패배, 리폼 UK의 부상 등이 겹치면서 노동당 내부에서는 “다음 총선을 스타머 체제로 치를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커졌습니다.

영국에서는 최근 약 10년 동안 총리 교체가 잇따랐습니다. 캐머런, 메이, 존슨, 트러스, 수낵, 스타머까지 정치 지도자가 짧은 기간에 계속 바뀌어 왔습니다.

이 흐름 속에서 버넘이 총리가 된다면 또 한 명의 새로운 총리가 탄생하게 됩니다.

다만 이는 단순히 “또 총리가 바뀐다”는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버넘의 등장은 런던 중심 정치에서 지방 중시 정치로, 관리형 정치에서 감정과 현장에 호소하는 정치로 노동당의 방향이 바뀔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버넘은 어떤 정치를 지향하나

버넘이 강조하는 것은 지방분권, 지역 경제 재생, 공공서비스 강화, 그리고 영국 북부의 재산업화입니다.

그는 런던만 부유해지는 경제가 아니라, 지방 도시와 노동자층에도 혜택이 돌아가는 사회를 주장합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지방자치단체와 시장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자는 생각입니다. 그레이터 맨체스터 시장으로 일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버넘은 “지방에 맡기면 더 잘할 수 있다”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또한 노동당 안에서는 스타머보다 변화를 더 알기 쉽게 보여 줄 수 있는 인물로 여겨집니다.

버넘의 정치적 방향을 간단히 말하면 “중앙에서 지방으로”, “런던에서 북부로”, “관리형 정치에서 현장 중심 정치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총리가 된다면 국가 전체의 정책을 책임져야 하므로 지방파 이미지에만 머물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그의 정치적 강점이 지방 중시에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한편으로는 불안 요소도 있다

물론 버넘이 총리가 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총리에게는 지방 행정과 전혀 다른 능력이 요구됩니다. 외교, 안보, 재정, 국제경제, 이민 정책 등 국가 전체를 움직이는 판단이 필요합니다.

버넘에게는 각료 경험이 있지만, 중앙 정치의 최전선에서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시기도 있습니다. 시장으로서의 인기를 총리로서의 실행력으로 바꿀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또한 버넘은 “서민파”, “지방파”로 지지를 받는 한편, 정책적 입장이 시기에 따라 달라져 왔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중도 노선, 좌파적 주장, 지방 중시, 재정 확대에 대한 기대 등 여러 얼굴을 갖고 있기 때문에, 총리 후보로서는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더 분명히 제시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버넘이 총선을 거치지 않고 총리가 될 경우, 야당으로부터 “국민의 신임을 직접 얻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앤디 버넘의 경력을 한마디로 말하면

앤디 버넘의 경력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중앙 정치를 아는 지방파 정치인”입니다.

그는 중앙 정치에서 하원의원과 각료를 경험했습니다. 노동당 대표 선거에도 도전했습니다.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공부한 엘리트적 경력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때 중앙 정치에서 물러나 그레이터 맨체스터 시장으로서 지방의 시각에서 정치를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그 결과 런던 정치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 노동당의 미래를 걱정하는 의원들, 리폼 UK의 부상에 위기감을 느끼는 지지층으로부터 다시 기대를 모으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버넘의 경력은 단순히 곧게 뻗은 출세 이야기가 아닙니다. 중앙 정치에서 기대를 받았고, 당 대표 선거에서 패했으며, 지방 정치에서 재평가를 받았고, 영국 정치가 흔들리는 가운데 다시 총리 후보로 돌아온 인물입니다.

정리

앤디 버넘은 영국 노동당에서 오랫동안 주목받아 온 정치인입니다.

지역의 가톨릭계 학교를 거쳐 케임브리지대학교 피츠윌리엄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습니다. 이후 정치인의 리서처와 정책 스태프를 거쳐 2001년 하원의원이 되었고, 보건장관과 문화·미디어·스포츠장관 등을 역임했습니다.

노동당 대표 선거에 두 차례 도전해 패한 뒤에는 그레이터 맨체스터 시장으로 지방 정치에 나섰고, “북부의 왕”이라고 불릴 만큼 강한 존재감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2026년 6월, 메이커필드 보궐선거에서 중앙 정치에 복귀했습니다. 그 직후 스타머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버넘은 차기 영국 총리 후보로 단숨에 무대의 중심에 섰습니다.

버넘의 경력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한 출세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케임브리지대학교 출신이라는 엘리트적 면모를 갖고 있으면서도, 정치인으로서는 지방의 목소리와 노동자층의 불만을 대변해 왔습니다. 한때 노동당 대표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중앙 정치에서 물러났지만, 지방 정치에서 지지를 다시 쌓았고, 영국 정치가 불안정해지는 가운데 다시 국가 지도자 후보로 돌아왔습니다.

런던 정치에 대한 불만, 잉글랜드 북부의 목소리, 노동당의 위기, 리폼 UK에 대한 대응.

앤디 버넘이라는 정치인은 현재 영국 정치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비추는 존재입니다. 앞으로 그가 실제로 총리 자리에 오를지, 그리고 영국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에 큰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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